지난 밤 난 침낭위에 담요를 두개나 덮고 잤다. 지금까지 베드버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담요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한이 나니 별수 없다. 담요를 하나 더 덮을까 했지만, 남은 하나는

할아버지 한분이 사용하셨다. 제일 젊은 애가 담요를 두개나 뒤집어 쓰니, 좀 미안하긴 했다.

몸상태는 좀 나아진 것 같다. 그러나 폐병환자 같은 격렬한 기침과 쉰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무섭다.

 

중간에 재희와 영찬, 후쿠다 아저씨를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난 혼자 걷는게 좋다. 정확히는 혼자가 좋다기보다는 편하다. '

사회성에 문제가 있음을 나도 안다. 혼자가 대체로 편하기는 하지만, 하루에 두번 정도 불편하다.

하루 한번 식당에서 밥먹을때, 먹고 싶은 것을 다양하게 시키기 어렵다.

그리고, 좋은 경치나 멋진 건축물과 함께 피사체가 될 수 없다.  가끔 외국인에게 찍어달라고 해도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거다. 내가 폰이 좀 옛스럽기도 하지만서도...

 

재희는 사진작가다. 난 그래서 후덜덜한 카메라를 들고 왔을 줄 알았는데, 작은 똑딱이 뿐이다.

제주 올레길 걸을 때 그거 들고 다니면서 무거워 뒈질 뻔 다고 한다 ㅋ  그는 사진작가임에 틀림없다.

 

3G 스마트폰으로 찍은 내 사진은 대체로 별로다. 아주 가끔 감정이 느껴지는게 다행이다. 물론 나만 느끼는 것이지만...

이 사진도 그렇다. 이번에 처음 안 건데, 저 멀리 보이는 점 같은 사람, 사람의 뒷모습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을 느꼈다.

주변 환경과의 어우러짐이나, 내가 상대방에게 가지는 감정, 그때 느낀 아련함같은 것들이다.

이 남자는 영찬인데, 그는 직업군인출신이어서인가 다부져 보였다. 투박하지만, 진실하고 우직한 느낌을 그의 뒷모습에서 느낄 수 있다.

 

 

저 멀리 모이는 삿갓은 후쿠다 아저씨... 이 둘은 며칠동안 단짝이었다. 영찬이는 혼자 후다닥 언덕을 올라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찍어 주었다.

난 후쿠다 아저씨를 찍는 영찬이를 찍어, 이 사진에는 둘이 나온다.

 

이 길은 그다지 멋진 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사판이 군데 군데 있고, 황량하고 그늘도 없는

이 날은 길이 계속 이런 꼴이었다.

 

벨로라도에 거진 다 도착해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바람도 거세게 분다.

드디어 에스테야에서 새로 산 우의를 입을 수 있다 ㅎㅎ

그러나 바람때문에, 큰 우의가 휘날려 팔을 끼울 수가 없다. 결국 비를 다 맞고나서야 우의의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

좀 바보같다.

후쿠다 아저씨가 무니시팔은 좀 안 좋다는 명성이 있다고 딴 데로 간다. 난 좀 기다려 재희와 영찬을 만나서

후쿠다 아저씨를 따라 갔다.

침실이 어땟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토요일 오후라 문연 식당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아, 점심을 이곳 알베르게 식당에서 먹었다. 10유로... 평범한 샐러드와

닭다리를 먹었다. 그리고 카미노 내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디저트... 이런 걸 뭐라고 하나??? 푸딩인가, 커스터드인가? 

잘 모르겠지만, 쥔장이 직접 만들었다며, 끝내준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시원하고 달달한 것이 디저트같았다. 

대부분 식당에서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를 주는 것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저녁은 리나가 준비하기로 했다고 두 친구가 리나를 찾으러 갔다. 수선화같이 청초한 느낌이 드는 리나... 재희는 한국에서도

먹힐 수 있는 얼굴이라고 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어쨋든 리나와 함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저녁을 리나 혼자 준비했다. 나머지는 구경... 부담감 팍팍 느끼며 뭔가를 천천히

오래 하고 있다.

우리 청년들은 좀 안절부절 하는 것 같다. 리나는 걸음도 천천히 걷고, 음식도 천천히 하는 것 같다.

1시간 이상을 한 끝에 나온 것은 쪼그만 우렁이 모양의 파스타-쌂으면 엄지손가락 사이즈로 커진다-로   만든 크림 파스타...

나는 크림 파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성과 고생이 너무 기특해 한 컵을 다 먹었다.

감기로 오한이 드는데 뜨거운 파스타가 나름 괜찮았지만, 한 컵이상은 무리였다.

냄비안에서 우렁모양의 파스타는 콩알만하던게, 엄지손가락사이즈로, 다시 더 큰 엄지손가락으로 자라고 있었다.

쉽게 사라질 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남은 파스타를 다 먹었다. 엄지손가락 여러번 들면서...난 거짓말을 못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재밌는 저녁 식사였다.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다. 목이 많이 부었고,  피도 난다.

하루 쉴까를 고민하며 침대에 누워 있다가 8시에 간신히 일어났다. 가방을 싸다, 내피를 버렸다.

이제는 안 추울 알고, 귀찮아졌다. 바보같이, 감기에 걸려 골골 대면서...

아소프라까지 일단 가서 상태를 보기로 결정했다. 

 

 

8시가 넘어 출발하는 게으름뱅이 순례자의 모습,

바나나와 오렌지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오한이 들어 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아픈 몸을 끌고 걷는다.

아소프라까지는 불과 5.9km, 천천히 가도 1시간30분이면 갈 거리를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두시간만에 갔다.

아주 낮은 경사의 언덕길도 나에게는 벅찼다. 무조건 아소프라에서 쉬어야겠다. 난 더 갈 수 없다.

아소프라 바르에서 큰 보카디요와 역시 큰 잔의 카페콘레체를 마시고 1시간 가까이 쉬었다. 그러니 걸을만하다.

슈퍼에서 초콜렛과 바나나를 사서 끼워 넣고 다시 걷는다.

 

 

이 녀석은 아소프라인가, 아님 다음 마을인가에 만난 인심 좋은 고양이, 쓰다듬어 달라고 팔짝팔짝 뛰고 포즈도 제법

잡는다. 지금 얼굴의 상처를 보니 쌈 꽤나 하는 녀석인가 보다. 눈이 아주 섹시한 녀석이다.

 

몸이 좀 가벼워 지고 힘도 나니, 발걸음이 다시 빨라진다. 저기 보이는 저 마을이 산토도밍고일까?

발이 많이 아프다. 결국 도착했다. 스스로 대견해 했다. 힘들어도, 아파도 갈 길은 가는구나.

제일 처음 만난 알베르게에 몸을 풀었다. 나 뒤로 금새 full이다. 시설은 몹시 낡았지만, 이층침대가 아니라 좋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는 작은 방에 침대3개가 있다. 씻고 양말을 대충 빨고, 누웠다.

침낭과 담요두개속에 몸을 묻었다. 오한과 기침을 하며 비몽사몽,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한데, 자는게 더 좋아 그냥 잤다.

그러던 중 영찬과 재희가 나를 찾으러 왔다. 이곳은 공립알베르게가 아니라고 한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

나는 좀더 잤다. 7시에 공립알베르게로 가니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후쿠다아저씨외에 리나라는 예쁜 일본여자가 있다.

수선화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본 여자애다.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재희와 영찬의 태도가 좀 달라진다.

더 열심히 한다고 할까? 돼지수육과 볶음밥, 와인으로 저녁을 아주 잘 먹었다. 감기가 날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산 빵과 햄으로 보카디요를 만들어 재희와 아침을 먹었다. 도심에서 캐나다 아줌마 킴을 만났고,

로스아르코스에서 한 방을 쓴 독일인 아줌마도 만났다. 호텔에서 자서 뉴우먼이 됬다며 기분좋아 보였다.

도시 외곽에 큰 호수가 있다. 거기서 산책하고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간다.  잠시 잠깐 만나는 사람들도 스쳐간다.

이런 도시를 지날때 마다 느끼는 건데, 도시에 들어가 숙소를 찾는 길이 항상 멀고 힘들게 느껴진다.

또 도시를 떠날때도 빠져나오는 길이 멀다. 빠져나오는 길이 길게 느껴진다.

거리를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진도를 빼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더울 것 같다. 아침부터 너무 덥고, 땀이 많이 난다. 가방도 무겁다.

그런데 금새 오한이 든다. 다시 너무 덥고... 자켓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했다.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아침에는 컨디션이 좋았는데, 점점 쳐졌다. 길이 멀다. 아니 멀게 느껴진다.

이 멋진 포도나무 길이 벅차 보인다.

 

나예라에 들어와서도 알베르케를 찾아가는 길이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작은 다리를 건너 화살표를 따라가니

예쁘장한 알베르게가 있다. 이때만 해도 공립과 사설의 구분을 정확히 못하던 나는 그곳이 공립인 줄 알고

그냥 주저 앉았다. 사설인 것을 알았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여자들만 있는 작은 방, 4인실에 이층침대를 배정받았다. 깨끗하고 알록달록 예쁘다.

남녀구분된 샤워실과 화장실도 오랜만이다.

간신히 씻고 누워 잠을 잤다. 간만에 본 매너없는 외국인이 엄청 떠들어 너무 거슬렸다. 나가서 말하지...

기침과 오한이 심해진다. 배가 고프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라도 먹어야 살겠다 싶어 일단 나갔다. 다리를 끌며 식당을 찾는데, 재희를 만났다. 잘됬다 싶어

거기 알베르게에서 얼큰한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맥주한잔을 더 마시고, 공립알베르게를 가서 영찬과 후쿠다상을 만나

와인한잔을 마셨다. 감기는 점점 심해진다.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나...

돌아가는 길에 비가 쏟아진다. 설상가상이다. 내일 출발할 수 있을까?

 

4인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서 일찍 일어날 줄 알았다. 그분들은 늦잠꾸러기들이었다.

7시가 다 되도록 쿨쿨 자고 있다. 덕분에 나도 그때까지 자다 일어나 정신없이 짐을 싸고,

아침먹고 출발했다.

오늘, 좀 많이 걷고 싶다. 지난 번 하루 쉰 걸 만회하고 싶다는 생각, 같이 걷던 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은 로그르뇨까지 가기고 결정했다. 약 30km,지금까지 중 가장 긴

일정이다.

 

 

이 사진은 로스아르코스에서 10km 정도 간, 토레스 델 리오에서 찍은 것 같다.

이런 표지판은  있다고 가야할 길이 짧아지는 건 아니지만, 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안심이 된다.

불안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때론 잘 못 표시된 것도 있으니, 예상과 달리 시간이 더 걸리고 더 많이 걷게 되면, 화가 난다는 부작용도 있다.

넘어가면서 이런 이정표는 거의 사라져서 좀 당황했었다. 금새 익숙해지기도 했다.

 

토레스 델 리오 바르에서 쥬스와 싸온 보카디요를 먹었다.

그리고 크록스 슬리퍼를 놓고 왔다. 작고 가벼운 정말 좋은 슬리퍼였는데, 빵 먹으며 옆에 꺼내 놓고 온 걸 로그르뇨에서

알았다.

몸상태는 좋은 것 같은데, 다리가 묵직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다. 발걸음이 무겁다.

 

비아나에서 잠시 쉬면서 남은 보카디요과 쥬스를 먹었다. 정말 1시간마다 뭐든 먹어줘야 걸을 수 있다.

로그르뇨까지 남은 10km는 꽤 힘들었다. 시간도 3시간 가까이 걸렸다.

3시 30분정도 도착하니, 공립알베르게는 이미 다 찼다. 재희를 만나 하나 있는 사설을 찾아 갔다.

다행히 거기는 아직 침대가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1층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슬리퍼를 잃어버린 것이 좀 속상했다. 

내일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슈퍼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너무 많이 걸었다.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저녁은 공립알베르게에 있는 창우, 태연, 영찬, 후쿠다상과 해먹었다. 밥과 일종의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 아침은 걷기 좋은 날씨였던 것 같다. 바람이 서늘하고, 적당한 햇살과 해를 가리는 구름,

길도 편안하고, 속도가 좀 난다. 어제 쉬었더니 몸이 가볍다.

게다가 아침도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밥과 국을 먹었다. 한국인 언니들에게 얻어 먹었다.

어제 산 과일도 주섬주섬 먹으며 걸었다.

 

 

 

떠나고 얼마 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났다. 이라체 와인이 유명한데, 그 이유는 수도원 앞에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물처럼 ㅋㅋㅋ. 꿈같은 일이지만, 와인맛이 별로다. 

  

 

같이 가는 한국인이 없으니, 로스아르코스에서 어느 알베르게로 갈지 난감하다. 가다가 눈이 마주친 독일인 스테판에게 물어본다.

너 어느 알베르게가 좋은 지 알아?

그가 오스트리아 어쩌구 저쩌구 한다. 난 리스닝이 너무 약해서, 독일인이면서 오스트리아를 말하는지 이상했다.

대충 알아들은 척 하고, 로스 아크로스에 와서 알았다.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 이름이 까사 드 오스트리아 였다.

마을도 너무 초라하고, 작아 뭔가 더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냥 여기 머물렀다. 아침 포함해서 4인실이 13유로, 그 이상은 11유로인데,

조용하게 4인실로 갔다. 그러나 또 2층침대 윗칸, 오르내릴 때마다 발이 너무 아프다. 할아버지 두분이 있고, 나머지 나이 든 독일인 여자가

들어 왔다. 할아버지들이 팬티만 입고, 다니는 건 정말 적응안된다.

 

작은 가게에서 스파게티면을 사서 칼국수처럼 끓여 먹었다. 저녁을 그렇게 먹고, 마을 구경을 하다 재희를 만났다. 그리고 성당구경.

이 작고 볼품없는 마을에 있는 산타마리아 성당은 화려했다. 역사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고,

내부에 금칠을 하고, 화려한 조각들이 있다. 이후로 계속 본 스페인 성당의 규모와 화려함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이 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려했다.

시간도 남고 할 일도 딱히 없어 미사에 참석했다.  .

3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은 성당앞 바르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신부님이 순례자를 위해 특별히 기도를 해 주었다.

여정 중에 용기와 힘을,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 주기를, 상처입지 않기를...

그 기도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신앙은 인간의 감정에 닿아 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현실의 고통에 발목잡힌 인간들이 현실의 염원을 가지고 기도한다.

영적 고향인 신에게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인지, 현실에서 더 잘 살고 싶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밤새 오한에 떨다가, 에스테야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며칠동안 같이 걸어온 이들과도 안녕이다.

그다지 친하게 걸어오지는 않았지만, 몇시간 뒤 그들이 그리워졌다.

아침으로 민주가 만들어 놓은 보카디요를 나눠먹고, 작별했다. 그후로 민주는 산티아고에서 만났다.

영수와 수정부부도 수정씨가 발목이 아파 며칠쉬어야 한다고 한다. 그들과 함께,

호스피탈레에게 하루 더 묵어도 되는지를 물어보자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한다. 담요도 부탁하자,

위에 있다고 한다. 오전에 에스테야 시내를 돌아다니며 장을 보았다. 어제 배고파 고생한 것 때문에

이것저것 사고 나니 10유로가 든다. 한끼 식사를 잘 먹을 정도의 돈이니, 내가 배가 고프긴 고팠나 보다.

숙소로 돌아와 스파게티를 잔뜩 해서 맥주와 함께 먹고, 잤다. 침낭과 담요를 둘둘 말고...

오한도 가라 앉고 좀 살 것 같다.

오후가 되자 처음 보는 순례자들이 들어 온다. 한국사람들도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낯설다.

 

 

 

다행히 어제처럼 비가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덜 마른 옷을 그냥 입었더니 춥다.

밤에는 근육통이 너무 심해 잠에서 깨서, 한참 다리를 주물렀다.

춥다. 걸어도 춥고, 다리도 많이 아프다. 덥다 춥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감기에 걸렸다.

덜마른 옷을 입은게 결정적인 것 같다.

 

Lorca에 도착했다. 한국에 살았고, 한국을 몹시 좋아한다는 쥔장이 있는 알베르게 겸 바에서

카페콘레체를 한 잔했다. 좀 쉬다 보니 민주가 들어온다. 여기는 와이파이도 된다.

쥔장은 한국말을 좀 했다.

 

 

 

여기서 멈출까 생각도 했지만, 과제를 수행하는 기분으로

에스테야로 출발한다. 아직 10km 남았다.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는다. 바람도 없고, 비도 없고, 태양도 숨은 날, 걷기에 더 없이 좋은 날

그런데, 너무 힘이 든다. 표지판에는 4km남았다고 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어도 도착하지 않는다.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너무 지쳐 죽을 것 같다. 간신히 씻고 누었다.

비몽사몽 헤매다 배가 고파 일어난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일요일이라 가게도 문을 연 곳이 없다.

주변에는... 배 고프고 힘도 없다. 피레네천사가 마당에서 이야기하다 나를 보고 걱정스럽게

괜찮냐고 물어본다. 영어가 짧아 괜찮다고 자다가 나와 그렇다고 말했다. 먹을 것 좀 있냐고 물어볼걸...

 

 

 

광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리 카페테리아가 하나 문을 열었다.

거기서 에스뜨레야 담 생맥주와 닭고기, 올리브와 빵을 먹으니 좀 살 것 같다. 여기도 생각보다 큰, 소도시이다.

바와 식당, 가게가 많은데 죄다 문을 닫았다. 좀 돌아다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누웠다.

너무 춥다. 침낭에 몸을 파묻어도 춥다. 내일은 여기서 쉬어야 겠다. 한국에서 가져온 체력이 바닥이 나는 것다.

공립알베르게는 이틀이상은 안된다고 하던데, 어떻게 할까 걱정된다.

 

비가 많이 온다. 팜플로나에 하루 더 있어도 비구경만 할 것 같아 출발하기로 한다.

허접한 싸구려 우의는 이미 너덜너덜, 찢어진 곳을 옷핀으로 여몄더니 더 찢어 진다. 제기랄 ㅠㅠ

너덜너덜한 우의를 입고 비가 좀 잦아들자 출발한다. 춥다. 내피를 입었다, 벗었다를 한다.

아침 저녁으론 겨울이고, 낮에는 여름이다. 옷가게에도 여름옷, 봄가을옷, 겨울옷을 모두 판다.

심한 진창길을 버벅대며 걷는다. 문득 스틱이 있으면 덜 미끄러질텐데 싶다.

그래도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애들보단 낫다.

 

그렇게 언덕을 올라, Alto de Perdon

페르돈 고개에 순례자들의 형상이 있다. 이렇게 비오고 추운 날에는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비를 맞으며, 바람을 헤치고 어디로 갈까? 왜 그렇게 꾸역꾸역 갈까?

 

곧바로 고개를 내려오는 길이다. 경사가 좀 급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체력이 남아 있어, 뛰어 내려간다.

비가 멈춘 듯 하더니, 다시 쏟아진다.  이미 신발속에도 물이 들어가 질척질척거린다.

너무 춥고 배가 고프다. Ulterga 에서 알베르게 겸 바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은 여기로 모여들었다. 카페 콘 레체와 또르띠야를 시켰다.

또르띠야를 보고 너무 놀랐다.

 

배고파서 한 입 베어먹은 또르띠야, 또르띠야는 계란에 감자등등을 넣고 만든 두툼한 오믈렛이다. 이것을

무지막지하게 큰 바게트빵사이에 끼워준다. 내 팔뚝만했다. 그러나 너무 배고파서 모두 다 먹었다.

옆자리에 마틴이 있었고, 피레네천사도 있었다. 그리고 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왔다. 비가 엄청 온다.

 

폴란드 앤드류 아저씨와 같이 걷는다. 굉장히 재밌는 아저씨다.

자기네 나라 말을 해보라고 하고, 난 한국말을 따라 해보라고 하고 그랬다.

이 아저씨가 삼성이야기를 하며 너넨 좋겠다고 말했다. 난 꼭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빈부격차도 심하고, 어쩌구 했는데,

이 아저씨 좀 흥분해서, 난 공산주의에서 살아봤다, 자유를 억압하고, 가난하고,,,네가 그것을 알아. 어쩌구 저쩌구

자본주의가 얼마나 좋은데 라고 말했다. 좋은 점도 있지... 근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이 아저씨는 좀 사는 게 분명하다.

그날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건축사였다. 그럼 그렇지.

 

이날은 너무 추웠다. 비도 쫄딱 맞고, 신발도 다 젖고, 옷도 다 젖었다. 세탁기를 돌릴까 했지만, 나의 적은 빨래를 위해

3유로를 쓰는 건 너무 아깝다.

그리고 점심먹다가 모자를 놓고 왔다. 아이구, 내 팔자야... 론세스바예스에서 세수비누와 빨리비누를 놓고 와서

그냥 씻고, 대충 물로만 빨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썬캡이 없으면 어쩌지? 혹시 나의 피레네 천사나 마틴이 챙겨오지 않을까란 기대를 해본다. 조금 설레며...

피레네천사를 만났다. 내 모자를 가져왔다. 너무 고맙고, 이뻐 보인다. 그는 피레네에서부터 나를 살려준 천사이다.

내가 10년만 어렸으면 어떻게 해볼텐데란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잠시 설레본다.

그에게 맥주와 핸드폰고리를 선물하며, 피레네에서부터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를 짤막한 영어로 열심히 말했다.

 

저녁은 앤드류아저씨와 그의 친구들, 포루투갈 안토니아 아줌마와 같이 먹었다. 앤드류아저씨는 마치 호스트같다.

폴란드인 앤드류, 보그단, 마아가렛, 독일인 헬무트, 나미비아에 온 마리아나.  유쾌하고 시끄러운 저녁식사였다.

가장 어린 내가 한국말도 알려주고, 나미비아말, 폴란드어도 좀 배워봤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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