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난 침낭위에 담요를 두개나 덮고 잤다. 지금까지 베드버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담요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한이 나니 별수 없다. 담요를 하나 더 덮을까 했지만, 남은 하나는
할아버지 한분이 사용하셨다. 제일 젊은 애가 담요를 두개나 뒤집어 쓰니, 좀 미안하긴 했다.
몸상태는 좀 나아진 것 같다. 그러나 폐병환자 같은 격렬한 기침과 쉰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무섭다.
중간에 재희와 영찬, 후쿠다 아저씨를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난 혼자 걷는게 좋다. 정확히는 혼자가 좋다기보다는 편하다. '
사회성에 문제가 있음을 나도 안다. 혼자가 대체로 편하기는 하지만, 하루에 두번 정도 불편하다.
하루 한번 식당에서 밥먹을때, 먹고 싶은 것을 다양하게 시키기 어렵다.
그리고, 좋은 경치나 멋진 건축물과 함께 피사체가 될 수 없다. 가끔 외국인에게 찍어달라고 해도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거다. 내가 폰이 좀 옛스럽기도 하지만서도...
재희는 사진작가다. 난 그래서 후덜덜한 카메라를 들고 왔을 줄 알았는데, 작은 똑딱이 뿐이다.
제주 올레길 걸을 때 그거 들고 다니면서 무거워 뒈질 뻔 다고 한다 ㅋ 그는 사진작가임에 틀림없다.
3G 스마트폰으로 찍은 내 사진은 대체로 별로다. 아주 가끔 감정이 느껴지는게 다행이다. 물론 나만 느끼는 것이지만...
이 사진도 그렇다. 이번에 처음 안 건데, 저 멀리 보이는 점 같은 사람, 사람의 뒷모습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을 느꼈다.
주변 환경과의 어우러짐이나, 내가 상대방에게 가지는 감정, 그때 느낀 아련함같은 것들이다.
이 남자는 영찬인데, 그는 직업군인출신이어서인가 다부져 보였다. 투박하지만, 진실하고 우직한 느낌을 그의 뒷모습에서 느낄 수 있다.
저 멀리 모이는 삿갓은 후쿠다 아저씨... 이 둘은 며칠동안 단짝이었다. 영찬이는 혼자 후다닥 언덕을 올라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찍어 주었다.
난 후쿠다 아저씨를 찍는 영찬이를 찍어, 이 사진에는 둘이 나온다.
이 길은 그다지 멋진 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사판이 군데 군데 있고, 황량하고 그늘도 없는
이 날은 길이 계속 이런 꼴이었다.
벨로라도에 거진 다 도착해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바람도 거세게 분다.
드디어 에스테야에서 새로 산 우의를 입을 수 있다 ㅎㅎ
그러나 바람때문에, 큰 우의가 휘날려 팔을 끼울 수가 없다. 결국 비를 다 맞고나서야 우의의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
좀 바보같다.
후쿠다 아저씨가 무니시팔은 좀 안 좋다는 명성이 있다고 딴 데로 간다. 난 좀 기다려 재희와 영찬을 만나서
후쿠다 아저씨를 따라 갔다.
침실이 어땟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토요일 오후라 문연 식당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아, 점심을 이곳 알베르게 식당에서 먹었다. 10유로... 평범한 샐러드와
닭다리를 먹었다. 그리고 카미노 내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디저트... 이런 걸 뭐라고 하나??? 푸딩인가, 커스터드인가?
잘 모르겠지만, 쥔장이 직접 만들었다며, 끝내준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시원하고 달달한 것이 디저트같았다.
대부분 식당에서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를 주는 것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저녁은 리나가 준비하기로 했다고 두 친구가 리나를 찾으러 갔다. 수선화같이 청초한 느낌이 드는 리나... 재희는 한국에서도
먹힐 수 있는 얼굴이라고 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어쨋든 리나와 함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저녁을 리나 혼자 준비했다. 나머지는 구경... 부담감 팍팍 느끼며 뭔가를 천천히
오래 하고 있다.
우리 청년들은 좀 안절부절 하는 것 같다. 리나는 걸음도 천천히 걷고, 음식도 천천히 하는 것 같다.
1시간 이상을 한 끝에 나온 것은 쪼그만 우렁이 모양의 파스타-쌂으면 엄지손가락 사이즈로 커진다-로 만든 크림 파스타...
나는 크림 파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성과 고생이 너무 기특해 한 컵을 다 먹었다.
감기로 오한이 드는데 뜨거운 파스타가 나름 괜찮았지만, 한 컵이상은 무리였다.
냄비안에서 우렁모양의 파스타는 콩알만하던게, 엄지손가락사이즈로, 다시 더 큰 엄지손가락으로 자라고 있었다.
쉽게 사라질 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남은 파스타를 다 먹었다. 엄지손가락 여러번 들면서...난 거짓말을 못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재밌는 저녁 식사였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세번째 날 : 5월 7일, Ages에서 Burgos 까지, 23km (0) | 2012.06.29 |
---|---|
열두번째 날 : 5월 6일 Belorado에서 Ages 까지, 28km (0) | 2012.06.26 |
열흘째 날 : 5월4일, Najera에서 Santo Domingo de la Calzada 까지, 22km (0) | 2012.06.22 |
아홉번째 날 : 5월3일, Logrono에서 Najera 까지, 28km (0) | 2012.06.22 |
여덟째 날 : 5월2일, Los Arcos 에서 Logrono 까지, 30km (0) | 2012.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