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은 걷기 좋은 날씨였던 것 같다. 바람이 서늘하고, 적당한 햇살과 해를 가리는 구름,
길도 편안하고, 속도가 좀 난다. 어제 쉬었더니 몸이 가볍다.
게다가 아침도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밥과 국을 먹었다. 한국인 언니들에게 얻어 먹었다.
어제 산 과일도 주섬주섬 먹으며 걸었다.
떠나고 얼마 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났다. 이라체 와인이 유명한데, 그 이유는 수도원 앞에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물처럼 ㅋㅋㅋ. 꿈같은 일이지만, 와인맛이 별로다.
같이 가는 한국인이 없으니, 로스아르코스에서 어느 알베르게로 갈지 난감하다. 가다가 눈이 마주친 독일인 스테판에게 물어본다.
너 어느 알베르게가 좋은 지 알아?
그가 오스트리아 어쩌구 저쩌구 한다. 난 리스닝이 너무 약해서, 독일인이면서 오스트리아를 말하는지 이상했다.
대충 알아들은 척 하고, 로스 아크로스에 와서 알았다.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 이름이 까사 드 오스트리아 였다.
마을도 너무 초라하고, 작아 뭔가 더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냥 여기 머물렀다. 아침 포함해서 4인실이 13유로, 그 이상은 11유로인데,
조용하게 4인실로 갔다. 그러나 또 2층침대 윗칸, 오르내릴 때마다 발이 너무 아프다. 할아버지 두분이 있고, 나머지 나이 든 독일인 여자가
들어 왔다. 할아버지들이 팬티만 입고, 다니는 건 정말 적응안된다.
작은 가게에서 스파게티면을 사서 칼국수처럼 끓여 먹었다. 저녁을 그렇게 먹고, 마을 구경을 하다 재희를 만났다. 그리고 성당구경.
이 작고 볼품없는 마을에 있는 산타마리아 성당은 화려했다. 역사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고,
내부에 금칠을 하고, 화려한 조각들이 있다. 이후로 계속 본 스페인 성당의 규모와 화려함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이 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려했다.
시간도 남고 할 일도 딱히 없어 미사에 참석했다. .
3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은 성당앞 바르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신부님이 순례자를 위해 특별히 기도를 해 주었다.
여정 중에 용기와 힘을,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 주기를, 상처입지 않기를...
그 기도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신앙은 인간의 감정에 닿아 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현실의 고통에 발목잡힌 인간들이 현실의 염원을 가지고 기도한다.
영적 고향인 신에게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인지, 현실에서 더 잘 살고 싶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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