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빛이 나는 사람을 볼때가 있다. 자신이 해온 일, 하고 있는 일을 아끼고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일이 돈을 많이 벌거나 사람들이 인정하는 전문직인가하고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높은 기준을 자신이 정하고 몰입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메일면을 좋아해서 잘한다는 냉면집이나 막국수집을 가끔 찾아가기도 하지만 소바는 좋아하지 않았다. 면은 그냥저냥 맛이 없었고, 쯔유는 많이 달았다. 구수한 면, 시원한 동치미나 진한 고기육수가 아닌 그냥 분식집 음식을 굳이 찾아 먹지 않았다.
한메순(한반도메밀순례단)에서 소바마에를 7월에 가기로 하고, 궁금해서 6월에 현정씨와 미리 가봤다. 성수동에 있는 작은 가게이다. 약간 지하라고 볼 수 있는, 반지하였다. 과거 성수동에 많았던 작은 공장 자리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마찌꼬바라 불리던 땅 아래 공장이었다. 쇳소리와 땀내로 가득찼던 거리는 가장 힙하고 비싼 땅과 건물이 되었다. 비싼 아파트가 들어서고 힙한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인간의 삶은 사라진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그렇게 작게 자리잡은 소바마에는 유명세에 비하면, 요즘 식당물가가 너무 올라서 값어치만 한다면 과한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본형, 자루소바를 먹었고 현정씨는 니씽소바를 선택했다. 면이 부드럽고 뚝뚝 끊긴다. 씹을 수록 구수하고 향이 느껴졌다. 좀 비싼 빵집에서 막 만든 거친 통밀빵을 씹을 때 기분좋은 느낌과 같았다. 쯔유는 지금까지 경험한 쯔유와 달랐다. 약간 달고, 짜고, 시고, 쌉쌀했다. 면만 먹어도 만족스러웠고 쯔유에 찍어 먹어도 좋았다. 그리고 추가로 시킨 온천계란과 새우튀김도 맛있었다. 음식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메순 공식 방문은 7월 13일 늦은 저녁이었다. 정말 비가 쏟아지는 목요일 저녁이었다. 이 모임을 이끌고, 메밀에 누구보다 진심인 박승흡 단장님과 함께여서 지난번 그냥 손님일 때와 달리 김철주 사장님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이번엔 공통으로 자루소바를 2개 주문하고 각자 원하는 소바를 주문했다. 니씽소바, 토로로소바, 카케소바, 에비텐소바, 온천계란등을 주문했다. 나는 따뜻한 에비텐 소바를 주문했다. 기본 가케소바에 새우튀김을 따로 내왔다. 온소바는 면이 쉽게 풀어지니 빨리 먹으라고 해지만 다른 소바와 나누어 먹느라 천천히 먹었다. 나중에는 젓가락으로 잡히지 않아서 그냥 후루룩 마실 정도였다. 설명을 듣고 나니 면과 쯔유의 맛이 더 풍성하게 느껴졌다. 박승흡 단장님의 오미가 다 들어있다라는 설명이 정말 맞아서 놀라웠다.
사장이나 쉐프인 김철주님은 일본에서 직장인으로 사업가로 살다 은퇴를 하고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에 성수동에 가게를 열었다. 일본에 살면서 소바를 너무 좋아하다 찾아다니며 즐기다가 배우게 되었다. 일본은 지역마다 소바가 다르고 공방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고 만든다고 한다. 김철주님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고 은퇴후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던 중 좋아하는 소바를 일로 하게 되었다. 삼비탕은 방송에서 만든 것이고, 손반죽도 하지만 기계반죽을 한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서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너무 맛있고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도 자신은 아마추어일뿐이라고 하며 몸을 낮추었다. 자긍심은 솔직함, 겸손함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진심으로 노력한 일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행복해보였고 자긍심도 느껴졌다. 맛이 좋다는 것은 감각만이 아니라, 어쩌면 좋은 사람의 의지와 노력까지 담아낸 그 어떤 것이 아닐까 한다.
그날의 기억을 정리하면서 새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은 운이기도 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내려놓을 정도로 스스로 지혜로워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