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도착 하루전날이다. 오늘 그냥 50km를 걸어 산티아고에 들어갈까란 생각을 잠시 했지만, 좀 멀다 싶다.

그냥 되는 데로, 발길 멈추고 싶은 데로 가자.

 

새벽에 멜리데를 나올 때 너무 어두어 앞선 순례자를 졸졸 따라갔다. 길을 모를 뿐더러, 난 야맹증도 있으니까...

그렇게 길을 나서 한참을 가다 쉬고, 중간에 재희도 잠깐 만나고, 며칠 전 만난 일본 아저씨도...

그 분은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저는데, 이 길이 두번째라고 했다. 순한 얼굴로 꾸준히 잘 걷는다.

 

 

 

이런 숲속 오솔길이 자주 이어진다. 햇빛이 나뭇이에 부서져 빛나고 새들이 지져귀니, 그림같고 헨젤과 그레텔이 헤메던 숲속 같기도 하건만, 이런 상상을 산산히 깨드리는 건... 줄줄이 싸놓은 소똥, 말똥... 밟을까 걱정이 아니라, 지날때 마다 식사하던 왕파리들이 시커먼 구름처럼 떠올라 웅웅대는 것이다. 더럽다. 환상은 개나 줘버리지.

 

 세인트이레네에는 알베르게가 단 하나 있는데, 도착하니 베드가 하나 있다. 난 멈출 수 있었지만, 앞서간 재희나 일본아저씨가 지나쳐 갔다는 말에 빌어먹을 승부욕이 발동해 이미 1시가 넘은 시간에 또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내 무덤을 내가 판다.

 

 

바르안에 있던 개. 이 나라는 개가 여기저기 다 있다. 바르에도 드나들고... 물건 훔쳐갈까 지키는 건가 싶었지만, 너무 게을러 보인다.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다 들어가 쉬니, 의심을 한다. 아무도 없으니 의심하게 된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난 선택을 올바로 한 것일까?

 

정신없이 걸어가나, 굴다리 밑에서 발견한 한글이다. 그래. 은아랑 잘해 봐라.

 

아르카에 분명 다 왔는데, 알베르게 표시가 없다. 대신 길 건너 다시 카미노 표지가 숲속을 향해 있어서 알베르게는 더 가야 되나 보다 하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30분이상을 왔지만 숲속은 계속 되고 있었다. 숲을 다 지나니 시골길. 30분 전 만난 그 마을, 그 도로 근처에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내가 지나쳐 버린 것이다. 1시간을 더 지나 왔다. 산티아고가 17km 남았다는 표지가 있다. 나 오늘 산타아고 들어가나 보다.

17km를 가려면 이 몸상태로는 4시간은 걸어야 하는데, 그때가 오후 4시가 다 되었으니, 두 발로 산티아고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굴다리를 하나 지나니, 천국의 문처럼 호텔이 바로 있다. 나처럼 멍청한 순례자를 노린 호텔인가 보다. 호텔 앞 의자에 앉아 있는 한국인 부부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아르카를 지나쳐 4km를 더와서 택시타고 돌아갈까 하다 이 호텔에 있기로 했다고 한다.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루에 40유로. 그냥 들어 갔다. 침대는 완전 넓고 깨끗하고, 욕실도 크고 방도 크고, 천국이었다. 알베르게 2층침대도 아니고, 옆에서 뒤척이고 코고는 사람도 없었다.

이 호텔은 내가 스페인에서 묵었던 가장 좋은 호텔이었다. 씻고 내려와 한국인 부부와 맥주 한잔 마시고 조금 쉬다 저녁을 먹었다. 그 분들은 저녁생각이 없다고 해서 혼자 만찬을 즐겼다. 저녁 메뉴델디아가 14유로였다. 호텔이라 그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음식이다.

 

이 와인 한병을 다 먹었다. 주위에서 밥먹던 아저씨들이 쳐다보고 웃었다.  

 

 

계란과 채소를 볶은 전체요리, 맛은 그냥 저냥...모양에 신경을 좀 쓴 것 같다.

 

 

 

메인인 돼지고기 요리... 점심메뉴는 너무 좋았다고 하던데, 저녁은 좀 그냥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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