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하고 깨끗한 침대에 홀로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잠도 잘 잤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일어나 짐을 챙긴다. 7시가 넘어서, 8시에 길을 나섰다.
길거리는 한산하다. 바르에서 또르띠야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걷는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성당앞에서 어느 순례자에게 물어보니 다리 건너 쭈욱 내려가라고 한다. 그렇게 10분정도 내려가니
정겨운 노란 화살표를 만난다. 독일인 아줌마, 아저씨를 만나 잠시 같이 걷는다.
내 나이와 내 피부에 대한 놀라움을 듣고, 뭐 자주 듣는 이야기니까...
푹 쉬어서 몸이 가볍다. 그리고 위장도 금새 가벼워 지고, 금새 피곤해진다.
이 간사한 몸아... 10km를 걷다 빵과 주스를 마시며 잠시 쉰다.
어제 하루 쉬었으니, 좀 많이 걸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덥다. 삼볼까지 가고 싶은데 어쩌나...
쉬었는데 빨리 지친다.
그렇다. 메세타평원에 들어선 것이다. 산도, 나무도, 그늘도 없이 메마른 메세타 평원에 들어선 것이다.
덥다. 지친다. 마땅히 앉을 만한 곳도 없다. 순례자들은 햇빛을 오롯이 받으며 바위더미 위에 앉아 쉬고 있다.
지평선... 가도 가도 도착하지 않는 지평선을 만났다.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성급히 걸으면 화가 날 것 같았다. 마음을 붙들고
천천히 걸었다. 저 나무를 정면으로 보며 걷다가, 왼편에 놓고 걷다가, 뒤로 보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도대체 저 한그루의 나무는 왜 심어 놓은 걸까? 심지 말거나, 심으려면 많이 심어 놓지.
초록색은 밀.. 붉은 것은 흙, 파란 것은 하늘 뿐이다.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지친 몸도 가벼워 졌다.
그래도 너무 덥다. 몸이 타 버리는 것 같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메마른 돌과 산으로 둘러쌓인 오니오스 델 카미노에 멈추었다.
삼볼까지 갈까 말까 망설이다, 너무 덥고, 따뜻한 느낌이 좋아 여기서 쉬기로 했다. 20분에 뒤에 경악했지만 말이다.
이 마을에는 알베르게가 하나뿐이다. 바르도 하나, 작은 슈퍼도 하나...
알베르게에 접수를 하고 나니, 건물을 나가 돌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거대한 실내체육관같은 건물에 들어갔다.
아주 큰 텅빈 공간 벽에 침대가 정열되어 붙어 있다. 그 중 아무거나 고르면 된다. 벽에는 거미줄, 벌레가 기어다닌다.
알베르게 안의 침대는 이미 다 찼으니 하는 수 없었다. 그리고 더 늦게 온 이들은 바닥에 천을 깔고 매트리스만 놓고 잤다.
피난민의 대피소같았다.
우선 슈퍼에 가서 빵과 햄, 치즈, 과일, 맥주를 사와 점심을 먹었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하고 빨래를 하니 그래도 좀 낫게 느껴진다. .
알베르게 바로 옆 성당 앞에 많은 사람들이 뒹굴대고 있다. 햇빛이 좋고 바람이 좋으니 그러고 있다.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앞에 평원을 내려다 보니 눈이 시원하다. 초록만 넘실댄다. 막힘이 없다.
저녁은 제대로 먹어야 하니, 유일한 바르에 갔다. 단 하나의 바르... 긴 줄이 있다.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프랑스 할머니 세분과 동석했다. 세분은 자매들... 수년동안 조금씩 이 길을 걸어오고 있다. 동양인 여자를 궁금해 하고,
이런 저런 배려를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녀들은 올랑드지지자였다. 최근 대선결과를 만족해하고 있었다.
늙은 여자... 주름... 약해진 체력, 그렇다고 삶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충격적인 숙소에서 놀란만한 코골이가 내 옆에 있다. 높은 천정 가득히 울려퍼지는 소리에 밤새 잠을 설쳐야 했다.
그래도 잠은 잤다. 드디어 이 길에 묻혀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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