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는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고 집착했다고 한다. 전쟁중에도, 돈이 없어도... 반찬을 만들어도 그 모양이 아름다워야 했다고 한다.  6.25. 발발로 부산에 피난갔다거 서울로 돌아왔을때 시내에서 누군가 꽃을 파는 것을 보고 너무나 좋아했다고 한다. 

꽃가게

부산살이 3년만에 밤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내 산장 뜨락에 산삼이 나곡 더덕 순이 돋고..

이 꿈도 필시 쑥대밭이 된 서울 소식이 너무 귀에 익었던 까닭일 게다. 

나도 천지가 쑥대밭이 된 세상을 살았다. 

하늘을 보아도 산천을 바라봐도 태양까지도 모두가 무심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 

정말 3년만에 나 살던 서울에 돌아와서 

꽃가게  있음을 나는 몰랐다. 

오, 삶의 즐거움이여, 

아름다움을 바라고 의식하는 진실로 사람됨이여. 

그래서 전쟁을 그린 김환기의 그림도 참 알록달록하고 밝아 보인다. 

피난열차, 1951
판자집, 1951

"이런 것도 예술과 싸우는 것일까?"

1951년 부산에서 살 때다. 생철지붕 밑, 그것도 허리를 펼 수 없는 다락 속이었다. 이 다락 속에서 줄곧 일을 했었다. 삼복, 이 다락 속은 숨이 콱콱 막혔다. 한번은 복중에 일을 하다 말고 내 정신상태를 의심해 보았다. 미쳤다면 몰라도 그 폭양이 직사하는 생철지붕 바로 밑에서, 그것도 허리마저 펼 수 없는 그런 다락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급한 부탁도 아니요, 들고 나가 한 됫박 쌀이나 소주 한병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형편도 아니었다. 그저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일을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달콤한 문학적인 것으로만 여겨왔던 예술과 싸운다는 말을 이 다락 속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현실을 외면했다 비판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비참한 상황이라고 고통만 느끼고 비극만을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김환기는 아름다움을 바라고 찾는 것이 인간됨을 구별하는 징표로 본 것 같다. 4.16. 참사로 자식을 읽어 비탄에 빠진  어느 부모가 자신이 어느 순간 웃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그래야 사니까, 작은 행복의 순간도 없다면,  사소한 아름다움도 볼 수 없다면 인간으로 살아있다 할 수 없으니까... 판자집 양철 지붕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름다움을 찾아 그리고 있는 모습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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