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을 되새겨 보면, 높은 산, 짙은 안개, 추위, 바람 그리고 불안, 분노가 기억난다.

순례자들은 드문드문 보였다. 서너명이 함께 가다 뒤쳐지다 보면 혼자 걷고 있다.

산속은 후덕지근 했다. 오늘도 꽤 높은 산을 넘어가야 한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금새 지쳐 주섬주섬 먹어가며

자주 쉬었다. 진창길이 이어져 마땅히 앉을 데도 없었다.

꽤 높이 올라 오니 마을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춥다.

같이 걷던 이들은 알베르게에서 잠시 쉰다고 다른 방향으로 가고 난 요구르트를 하나 먹으며 계속 걸었다.

화살표를 따라 혼자 걸어갔다.

 

이 소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 걸음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넌 누구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높이 올라오니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워진다.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다른 봉우리들이 다 아래 있다. 해발 천미터 이상 되는 곳이니, 키큰 나무도 없고, 고만고만한 풀들, 꽃들이 널려 있는데 하늘은 검푸르뎅뎅하고 바람은 서늘하니 강단있다. 앞으로 뒤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 왔다. 난 한국에 있을 때도 이런 산을 혼자 간 적이 없는데, 이 먼 곳에서 이러고 다니다니... 길을 잃을까, 추위에 조난이라도 당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다 보니 마을에 들었다. 바르가 눈 앞에 있어 얼른 들어가 카페콘레체와 케익을 시켜 먹었다. 배도 부르고 몸이 따듯해지니 다시 힘이 생겨 걷기 시작했다.

 

다시 인적 드문 길이 이어진다. 겁이 난 나는 한 는 외국인 여자에게 같이 가자고 있다. 무섭다며...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그녀는 기꺼이 나와 걸어주었다. 그러다, 마리아 언니 일행을 만났다. 산길을 걸으며 마리아 언니는 혜수가 혼자 이길을 걸으면 무섭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내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잠시 점심을 먹겠다는 그들과 헤어졌다. 다시 혼자 걸어갔다.

 

 

몇 날밤을 같은 숙소, 옆 침대에서 머문 브라질에서 온 마리아. 남편인가 남자친구인가와 같이 다니는데, 발이 다 터져서 아파 하면서도 씩씩하게 걸었다. 이 날은 너무 반가와하며 인사를 해서 좀 감동이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 말은 안통했지만, 많은 말을 했다.

 

 오세브로 성당, 산 꼭대기에 성을 쌓고, 바닥을 골라, 멋진 마을을 만들고 이 성당을 지었다. 꽤 영성이 강해서 내력을 전혀 모르던 나도 성당에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벅차올라서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 식으로 하면 기운이 센 곳이라고, 우리나라라면 반드시 영험한 암자가 있을 자리인 셈이다.

 

 

오세브로 마을로 들어가는 순례자들, 이 마을은 아주 유명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마을에서 자기 위해 일정을 맞춘다고 한다. 인기가 많다 보 니 12시가 넘어 도착하면 숙소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분위기가 그럴싸해서 다음에 오게 된다면 이 하늘 밑 마을에서 나도 꼭 한번 자보고, 성당에서 신의 품에 안기고도 싶다.

 

 

 까맣기도 하다. 오세브로 입구에 있는 내모습,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알토데포요(Alto de Poyo), 오늘 일정 중 가장 높은 꼭대기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2개와 바르 뿐, 황량한 도로가 이어지고 있다. 안개는 자욱하다. 이 길을 내려가야 한다. 자욱한 안개 속을 사람들을 따라 걸어 들어 갔다.

 

알토데포요을 지나는 길... 산길을 걷다 보니 스스로가 대견해 진다. 이런 길도 혼자 잘 걷는구나...

 

내려올 수록 안개는 점점 걷히고 초지가 펼쳐진다. 그림처들럼 누워 있는 소들도 한가롭다. 골목골목 소들이 튀어 나오기도 해서 갑작 놀라기도 했다.

 

 송아지와 엄마소, 무심한 것 처럼 보이지만 서로 신경 참 많이 쓰고 있다

 

 

 

이렇게 산 아래로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높고 춥고 외롭고 무서웠던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폰 프리야는 마을 전체가 소와 소똥으로 비벼져 있는 것 같았다. 알베르게가 있어지만, 이곳에서 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메뉴델디아를 먹지 않고, 스테이크와 와인한잔만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니 피로가 풀린다. 그래서 더 걸을 힘이 생겼다. 제기랄.... 술이 문제였다.

그 뒤로 9키로를 쉬지 않고 걸었다. 다리가 꼬이고 발바닥을 칼로 쑤시는 것 같았지만, 트리아 까스텔라까지는 가야 했다.

너무 다리가 아파 그냥 달려 버렸다. 그렇게 4시가 넘어 도착한 트리아 카스텔라 공립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사실 난 그날, 베드벅이 때문에 맨붕이었다. 이미 팔과 다리까지 나란히 열을 지어 물렸다.

침대르 배정받고, 호스피탈레에게 담요부탁을 하다, 세탁을 하라는 권유를 받고 세탁기에 침낭, 배낭, 옷들을 다 쓸어 넣고 돌리고 건조기로 바싹 말렸다. 베드벅을 다 죽이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세탁과정도 쉽지 않았다. 내가 동전세탁기를 사용할 줄 몰라 호스피탈레가 동전까지 다 바꾸어서 넣어 줬다. 민폐다. 모르니 어쩔 수 없지... 유럽여행경험도 없으니...

옷을 다 빨고 원피스한장 입고 있으니 얼어 죽을 것 같다. 비까지 뿌린다. 제기랄...

그렇게 세탁까지 하고 바로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돼지고기스테이크같은 것과 계란후라이, 감자가 있는 세트메뉴와 맥주를 마시니 파란만장했던 하루가 이렇게 가나 싶다. 와이파이가 되니, 인터넷검색을 하고 마이피플로 잠깐 통화도 했나... 카톡도 하고, 완전히 떠나온 것 같지도 않다.

며칠만에 베드벅의 공포에서 벗어나 뽀송한 침낭속에 잤다. 비록 아래, 옆 모두 건장한 남자들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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