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출발한 사람들의 침대가 비어 있다. 6시 정도인데도, 이미 대부분의 침대가 비어 있다. 물론 10개밖에 안되는 침대이지만...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6시30분에 연다는 바르에 가니, 주인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내보낸다. 무슨 사정인지...

바로 근처 사설 알베르게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을 먹었던 사설 알베르게, 아침을 먹고 나니 침침한 어두움이 완전히 걷혀 있다.

 

 

다시 출발, 오늘은 어떤 길을 걸어갈까, 나는 어디에 멈출까? 

 

엘간소, 어제 마리아 언니 일행은 여기까지 간다고 했었다. 그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 가고 있겠지.... 

 

9시 반쯤 엘간소에 도착했다. 바르에 들러 여느때처럼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시 출발했다. 조금씩 오르막길이 나온다. 오늘을

높은 산을 올라야 한다. 해발 1500미터 되는 높은 산이지만, 난 얼마나 높은지 가늠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는 거지...

 

 

이제 막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인 것 같다. 아마도 이 사진을 찍을 때는 내 마음이 여유로왔던 것 같다. 

그러나 이날은 산티아고 여정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힘든 날이 될 것을 그때는 몰랐다. ...

 

상당히 높다. 주변 산들이 모두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바람도 세다. 피레네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공포가 밀려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그 바람을 다시 만난 걸까? 난 살아서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바람은 문제가 아니었다.  끝없이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는 산길, 그리고 내 선택이 나를 정작 힘들게 했다.

12시 30분 경 폰세바덴에 도착했다. 산꼭대기에 있는 이 마을까지도 도로는 나 있었다. 사람이 살 만한 집은 없고, 무너져 가는 몇 채의 집, 바르를 겸하는 알베르게만 서너개 있는 순례자를 위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이 마음이 들지 않았던 나는 다음 마을인 만하린까지 가기로 했다. 몇번 같은 숙소에서 만난 마리아,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스페인 사람 마리아도 망설이다 만하린까지 가기로 했다. 우리는 같이 출발했다.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이 점점 빨라진 난 마리아를 앞서 갔고, 우리는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폰세바덴.... 힘든 것만 생각하면, 난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폰세바덴을 떠난 이후로 거의 쉬지 않고, 3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cruz de Ferro  산꼭대기, 그리고 자그마한 언덕 위에 솟은 이 십자가가 난 정말 기괴하게 보였다.  거대한 불상을 세워 놓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를 채운 십자가 군단을 보는 것처럼 불편하다.

 

 지루한 산길을 걷는 나를 웃게 만든, 예쁜 꽃들... 난 노래를 부르며 이 길을 걸었다.

 

만하린은 마을이 아니었다. 작고 낡아빠진 휴게소였다. 기념품이 있고, 커피를 공짜로 주는 작은 휴게소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락방에 침상도 몇개 있고, 저녁도 준다고 한다. 그러나 난 도저히 여기서 머물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출발했다. 엘 아세보까지, 약 7km이니, 1시간 반이면 가겠다 싶었다.

 

 

높은 산....

 

 높은 산, 오르막길, 내리막길, 산허리를 몇 십번을 돌았다. 시간을 보며 7km이니 천천히 가도 2시간이면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힘들어졌다. 게다가 난 2시간째 거의 달리다 시피 하고 있었다. 다리 근육이 굳어가고 있지만, 발만은 마치 내발이 아닌 것처럼, 자기 의지를 가진 듯이 빠르게 걷고 있었다.

드디어 나타난 급경사 내리막길, 내리막길 끝에 마을이 모습을 보였다. 내리막길도 뛰어 내려가 엘 아세보에 도착했다.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가 침대를 배정받고, 짐을 풀고, 씻고,  빨래하고, 아무리 지쳐도 해야 할 일을 하고, 동네를 구경했다.

이런 산골에 바르도 몇개 있고, 바르마다 알베르게도 하고 있다. 사설도 5유로정도이다. 바르에 들어가 와인을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렸다.

그리고 걷다가 마리아 일행을 만났다. 엘간소에서 출발해서 한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고 한다. 노인네들이 잘도 걷는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준다고 해서 기다렸다. 공립알베르게에서 주는 것도 먹어보자는 생각에 그랬지만, 그날은 마지막까지 쉽지 않은 날이었다. 요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너무 늦어졌고, 쵸리소가 조금 들어간 렌탈콩요리인데, 콩이 습격하는 것 같았다. 청국장을 퍼 먹는 느낌이 그럴 것이다.

너무 늦게 빨래를 했고, 비가 뿌려 수건도, 옷도 마르지 않는다. 어쩔까 싶다. 내일 젖은 옷을 입어야 할 걱정에, 아픈 발을 주무르다 잠들었다.

내일은 정말 조금만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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