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깻다.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발바닥, 발뒤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날부터 발바닥과 뒤꿈치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물집이 잡히거나 무릅이 나간 적은 없지만,
발바닥은 너무 아팠다. 차라리, 밑창이 두툼한 등산화를 신고 걷는게 차라리 나았다.
여행이 끝난지 2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아프다.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지만...
너무 피곤한 날이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이층침대라 뒤척이는 것도 눈치가 보이지만, 어쩌랴...
이 저주받은 몸뚱아리가 비명을 지르는데...
6시가 좀 넘어 결국 일어나, 짐을 챙기고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부르노와 그의 아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가장 힘들때 만난 쉼터, 친절을 준 그들이 나를 안아주었는데, 눈물이 났다. 간만에 느낀 따뜻함때문이었을까?
킴 아줌마와 함께 출발했다. 오늘은 조금만 걷자고 약속했다. 베르시아노스까지 20km 정도니, 부담없는 날이다.
그런데도 걷다 보니 사하군까지 11km를 한번에 걸었다. 중간에 딱히 쉴 곳도 없었다.
혼자 다니다 보니, 내 사진을 찍을 기회가 거의 없다.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걷다, 나무가 우거진 시내를 만나니, 마음이 좋다.
9시가 조금 넘었을 때인가, 사하군을 5km 앞두고 찍은 사진, 킴이 남편에게 보내라고 하면서 찍어 주었다.
까맣고, 튕튕 붓고 덥수룩한 내 모습... 참 촌스럽고 소박해 보인다.
사하군 초입의 귀여운 만화, 힘든 여정에 사소한 이 그림에 웃을 수 있다.
그리고 메세타의 끝. 레온을 이틀 뒤면 들어갈 수 있다.
사하군 초입에서 어떤 여자가 날듯이 걸어왔다. 인사를 하니, 한국인이다. 정말 빨리 걸어, 이유를 물으니,
물집이 잡혔는데, 곪아서, 너무 아파 빨리 걷는다고 한다. 아픈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해가 안된다.
사하군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킴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사람들은 여기 왜 와?
힘들어서... 돈을 벌면 행복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아. 일만 해. 돈도 많이 벌지 못하고... 캐나다 사람들은 여기 왜 와?
우리도 비슷해. 더 많은 돈을 원해.
이상하다. 너희는 복지가 잘 되어 있잖아. 병원비도, 교육비도 무료 아니야?
병원비는 무료야.
너네 병원 많이 기다리고, 불편하다고 하던데...
아니. 전혀 아니야. 모두 무료가 필요할 때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아주 잘 돼 있어.
근데, 대학은 아니야. 학비가 비싸. 내 친구는 의사인데,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대출받았어. 공부하는 동안 그녀가
진 빚이 20만달러? 가 그래. 그걸 갚는데 취직해서 5년이 걸렸어.
.
한국 등록금도 비싸. 근데 취직도 안돼. 실업률도 높고.
우리도 돈 많이 벌고 싶어해. 더 좋은 집, 좋은 차, 자식들 대학등록금.
이런 데 돈이 많이 들지. 난 이런 게 싫어. 난 천천히, 덜 쓰고 살고 싶어.
맞아. 어떻게 살 지 선택인 것 같아.
킴은 간호사였다. 손녀가 있는데, 아직 현역이다. 친절하고 쾌활한 멋진 여자였다.
킴과 사하군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고, 슈퍼에서 과일을 좀 샀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었다. 여기는 크지만, 좀 오래된, 예전에 영화로왔던, 지금은 죽어가는 도시같다.
길 가다 작고 투명한 뱀을 봤다. 아직 어린 녀석이다. 킴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갔다. 정말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아쉽다.
사하군 시내에 있던 이분은 동상? 동상이라기엔 그렇고, 쇠로 만든 순례자상이라고 하자. 암도 성인 야고보일지도 모른다.
지친 순례자임이 분명한데도 노랗고 둥그런 눈이 웃기다. 이 분은 길가던 순례자들이 한번씩 껴안고 사진 찍히는 분이다.
길은 계속 평지이다. 뜨거운 태양과 더위는 이제 받아들인다.
탄탄대로가 이런 것일 테지. 비도 바람도 없는 길. 걷기 좋아야 하지만, 힘들이다.
저 태양이 가려지만 좀 나을까? 두렵다. 마치 망망대해에 조각배를 타고 있는 것 같다.
탄탄대로도 뜨거운 태양을 받으면 걷는다면 좋은 것이 아니다.
탄탄대로를 에어컨 나오는 좋은 차 타고 쌩하고 지나가야 좋은 것이다.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평지나, 산이나, 골짜기나 다 마찬가지이다.
오르막, 내리막, 나무 무성한 숲, 평야가 번갈아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갈림길에서는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나같이 가이드북이나 지도하나 없이 가는 사람은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안 그러면 십 몇키로 동안 마을을 찾지 못해 고생을 해야 한다. 오늘의 목적지 베르시아노스를 확인하고, 다른
순례자에게 이 길이 맞는지 확인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가니, 금새 오늘의 목적지인 베르시아노스에 도착했다.
더 가려고 해도, 다리가 풀려서 발이 계속 돌부리에 걸렸다. 이제 멈추어야 한다.
12시 40분. 가장 이른 시간에 끝났다. 그러나 알베르게 문여는 시간은 1시30분.
배낭을 세워 놓고 기다렸다. 이미 바람처럼 걷는 여자가 있고,그녀의 동행이 왔다.
나중에 이름을 물어 보니, 여자는 최계원, 남자는 태인재. 연인인 줄 알았더니, 파리에서 만나
같이 여행하고 있었다.
호스피탈레가 한명한명에게 내부 규칙을 설명해주고, 다른 호스피탈레가 침대를 배정해 주었다. 2층을 주는 것을
다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니, 1층을 준다. 다행이다. 외부의 허름한 모양과 달리, 내부는 깨끗하다.
여기는 숙박이 모두 기부다. 저녁과 아침을 다 준다. 씻고, 빨래해서 널고, 동네구경을 나왔다. 바르에서 맥주와
보까디요로 점심을 먹었다. 팔뚝만한 보까디요를 반으로 갈라 먹고, 한덩어리는 내일 먹을 요량으로 챙겼다.
그리고, 와이파이가 되서 페이스북을 보는데 깜짝 놀랐다. 통진당 폭력사태...
서글프고, 답답했다. 비판을 못견뎌 적대시하는 것. 집단의 폐쇄성, 그것을 진리라고 옳다고 믿는 것.
사이비종교와 같다. 종교의 탈을 쓰고 있거나 사회운동의 탈, 혁명의 탈을 쓰고 있으면 진실을 보기 어렵고,
특히 내부인은 실체를 인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영혼을, 자신의 주체성을 내어 주었기 때문이다.
상식의 기준이 보편성이 아니라, 집단의 특수성이고, 삶의 의미가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외부의 신과 같은 주체에게
의탁하고, 심리적 안정과 심리적 보상을 받았다. 안됬지만, 이건 토론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심리적 노예에게 민주적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토론한 들 될 턱이 없다. 자신들의 지상천국을 실현해야 하는데, 민주주의는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자기가 힘이 있을 때는 거추장스럽고 기만해야 하는 형식일 뿐이다. 이렇게 인터넷이
되니 이렇게 먼 스페인 시골 촌구석에 있어도 한국에 있는 것 같다.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실제는 사진보다 더 낡아 보인다. 이 마을 전체가 이런 분위기다. 그래도 슈퍼도 있고, 바르도 하나 있긴 하다.
이날 유일한 바르에서 맥주와 절인 엔초비와 피클을 먹었는데,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다 같이 모여 저녁을 준비했다. 모두 자신을 소개했다. 내 앞에 미국인 스캇과 인사를 했다. 잘 생기고 친절하다.
군인출신이고, 부산에 잠깐 있었다고 했다. 자기는 휴가가 짧아 부르고스에 시작했고, 새벽 5시 정도에 출발해,
하루에 40km이상을 걷는다고 했다. 내일은 레온 근처까지 가고, 레온성당을 보고 레온을 통과할 거라고 했다.
군인출신이라 그런가, 체력이 장난 아니다. 그럴 수도 있구나... 나는 왜 꼭 레온에서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난 스,캇에게 내일 만시아 까지 걷고, 다음날 레온에 들어가 레온에서 하루 묵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일찍 출발하고 싶으니, 새벽에 좀 깨워 달라고 부탁했다.
내일은 정말 일찍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엄청난 냄비에 가득한 스파게티를 나눠 먹고 계원, 인재와 함께 설겆이를 했다. 8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해는 아직 중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