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이태원에 갔다. 10.29. 사고 직후 서울시청 광장에 분향소에 가서 그 형시적인 공간에 상처받은 이후 이름과 얼굴이 있는 제대로된 위패가 놓이기를 바랬다. 사고가 난지 49일이 지나 이태원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다시 조문을 했다. 이름과 사진이 놓인 그 자리에 지인들이, 또는 모르는 이들이 놓고 간 메모들이 있었다. 이태원역으로 올라가지 49재를 맞아 시민추모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미 여러번 이야기되고 나눠야 할 말들이 이제서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예상했던 가족들의 이야기였다. 나의 동생은 어떤 아이였고 어떤 추억이 있었고 하는 일은 무엇이고 앞으로 하고 싶은 그것이었다.. 내가 내 아들을 한국에 다녀오라고 한 게 잘못한 일인가? 이 나라는 내 아이가 어디에서 언제 죽었는지, 왜 그 병원에 누워 있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 이야기들을 나눌 사람도 없었고, 감시했다.
너무 슬퍼서 그들처럼 눈물이 흘렀다. 잠깐만 들여다 보고 가려 했는데, 도저히 한 발걸음도 뗄 수 없었다. 한시간 넘게 서 있으니 발이 얼어 붙어 걸었다. 길을 건너니 해밀턴 호텔 옆 좁은 골목으로 갈 수 있었다. 그냥 시작과 끝이 그리 멀지 않은 좁은 골목이었다. 그냥 금새 지나갈 수 있는 그 길에서 많은 이들이 압사했다는게 이해가지 않았다. 바로 앞이 큰 도로이고 지하철 역인데, 우리는 백만명이 넘는 집회도 해보고, 몇개의 지하철역에서 수십만명의 사람들을 쏟아내보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이 길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게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죽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모르는 나도 납득을 못하겠는데,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생명이 사라진 몸을 마주하고, 가족들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니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미쳐버릴 것 같은 상태일 것이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일도 미칠 노릇이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4.16. 합창단의 추모공연을 보면서 그들의 시간도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음을 느꼈다. 잊으라 해도 잊을 수 없고, 회복되지 않은 그 상처는 그대로이고, 다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도 피해자들에게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정치는 있어야 할 그곳에 없고 피해자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에게 피해를 줄까봐 대놓고 뻔뻔스럽게 모욕하고 스스로 지쳐서 자기혐오에 빠져들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