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쨋날 : 4월 28일, Pamplona에서 Puente la Reina, 25km
비가 많이 온다. 팜플로나에 하루 더 있어도 비구경만 할 것 같아 출발하기로 한다.
허접한 싸구려 우의는 이미 너덜너덜, 찢어진 곳을 옷핀으로 여몄더니 더 찢어 진다. 제기랄 ㅠㅠ
너덜너덜한 우의를 입고 비가 좀 잦아들자 출발한다. 춥다. 내피를 입었다, 벗었다를 한다.
아침 저녁으론 겨울이고, 낮에는 여름이다. 옷가게에도 여름옷, 봄가을옷, 겨울옷을 모두 판다.
심한 진창길을 버벅대며 걷는다. 문득 스틱이 있으면 덜 미끄러질텐데 싶다.
그래도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애들보단 낫다.
그렇게 언덕을 올라, Alto de Perdon
페르돈 고개에 순례자들의 형상이 있다. 이렇게 비오고 추운 날에는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비를 맞으며, 바람을 헤치고 어디로 갈까? 왜 그렇게 꾸역꾸역 갈까?
곧바로 고개를 내려오는 길이다. 경사가 좀 급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체력이 남아 있어, 뛰어 내려간다.
비가 멈춘 듯 하더니, 다시 쏟아진다. 이미 신발속에도 물이 들어가 질척질척거린다.
너무 춥고 배가 고프다. Ulterga 에서 알베르게 겸 바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은 여기로 모여들었다. 카페 콘 레체와 또르띠야를 시켰다.
또르띠야를 보고 너무 놀랐다.
배고파서 한 입 베어먹은 또르띠야, 또르띠야는 계란에 감자등등을 넣고 만든 두툼한 오믈렛이다. 이것을
무지막지하게 큰 바게트빵사이에 끼워준다. 내 팔뚝만했다. 그러나 너무 배고파서 모두 다 먹었다.
옆자리에 마틴이 있었고, 피레네천사도 있었다. 그리고 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왔다. 비가 엄청 온다.
폴란드 앤드류 아저씨와 같이 걷는다. 굉장히 재밌는 아저씨다.
자기네 나라 말을 해보라고 하고, 난 한국말을 따라 해보라고 하고 그랬다.
이 아저씨가 삼성이야기를 하며 너넨 좋겠다고 말했다. 난 꼭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빈부격차도 심하고, 어쩌구 했는데,
이 아저씨 좀 흥분해서, 난 공산주의에서 살아봤다, 자유를 억압하고, 가난하고,,,네가 그것을 알아. 어쩌구 저쩌구
자본주의가 얼마나 좋은데 라고 말했다. 좋은 점도 있지... 근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이 아저씨는 좀 사는 게 분명하다.
그날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건축사였다. 그럼 그렇지.
이날은 너무 추웠다. 비도 쫄딱 맞고, 신발도 다 젖고, 옷도 다 젖었다. 세탁기를 돌릴까 했지만, 나의 적은 빨래를 위해
3유로를 쓰는 건 너무 아깝다.
그리고 점심먹다가 모자를 놓고 왔다. 아이구, 내 팔자야... 론세스바예스에서 세수비누와 빨리비누를 놓고 와서
그냥 씻고, 대충 물로만 빨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썬캡이 없으면 어쩌지? 혹시 나의 피레네 천사나 마틴이 챙겨오지 않을까란 기대를 해본다. 조금 설레며...
피레네천사를 만났다. 내 모자를 가져왔다. 너무 고맙고, 이뻐 보인다. 그는 피레네에서부터 나를 살려준 천사이다.
내가 10년만 어렸으면 어떻게 해볼텐데란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잠시 설레본다.
그에게 맥주와 핸드폰고리를 선물하며, 피레네에서부터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를 짤막한 영어로 열심히 말했다.
저녁은 앤드류아저씨와 그의 친구들, 포루투갈 안토니아 아줌마와 같이 먹었다. 앤드류아저씨는 마치 호스트같다.
폴란드인 앤드류, 보그단, 마아가렛, 독일인 헬무트, 나미비아에 온 마리아나. 유쾌하고 시끄러운 저녁식사였다.
가장 어린 내가 한국말도 알려주고, 나미비아말, 폴란드어도 좀 배워봤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