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므번째 날 : 5월 14일, Bercianos del Camino 에서 Villarente del Puente 까지, 33km
코고는 소리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잘생긴 스캇은 옆 침대 2층이었는데, 코고는 소리도 참 컸다.
새벽 5시가 좀 넘자, 나를 깨웠다. 어차피 잠도 못자니, 벌떡 일어나 침을 챙겼다.
이제 요령이 생겨, 자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화장실로 모든 짐을 끌고 와 화장실에서 짐을 꾸린다.
그리고 식당으로 내려가 과일과 요거트로 아침을 먹으려는데, 스캇이 출발하자고 한다.
난 아침 먹고 갈테니, 먼저 가...
그를 먼저 보내고 나니 좀 아쉽다. 같이 갈 걸 그랬나. 영어도 안되는데 좀 부담스럽다. 게다가 잘생긴 남자고.
아침을 먹고 나가니, 깜깜하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 이 길을 어찌 갈까 싶다.
마침 한 청년이 출발하려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같이 가지고 했다.
그는 어두운 새벽길을 헤드랜턴을 키고 성큼 성큼 앞장서 갔다. 가끔 내가 잘 오는지 돌아보며...
마을을 빠져나와, 표시가 있는 길에 들어섰다.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말도 못했다.
해가 뜨고, 다시 스페인의 열기속으로 빠져 들었다. 다시 힘이 든다. 배낭도 더 무거운 것 같고, 쉬고 싶다. 두
중간 중간 쉼터에 쉬었다. 양말을 벋고 다리를 쭉 뻗었다.
고생이 많다. 다리, 발.
물집으로 고생하는 계원이가 금새 쫓아 왔다. 그리고 쌩하니 가버린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걸을 수 있을까?
무릎이 아프다는 인재도 걸어온다. 정말 아픈데, 꾸역꾸역 걷고 있다. 이들은 아픈데 왜 쉬지 않을까?
걷다 지쳐 풀 숲에 있는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저렇게 예쁘고 시원하게 파란데,
내 어깨는 이렇게 아프고, 내 다리는 붓고 발가락은 감각이 없다. 내가 죽도록 걸어 아픈 것과, 이 하늘과 무슨 상관이람.
내가 처해 있는 이 조건과 나의 고통은 별개의 것이다. 원래 이 하늘은,이 태양은 여기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만시아 전 마을 레리에고스에 도착했다. 13km를 걷는 동안 마을이 없었으니, 커피한잔 마시지 못했다.
정말 힘들었다. 마을 초입에 있는 바르에 배낭을 내려 놓고, 커피한잔을 시켜 싸온 보까디요와 먹었다. 동양여자가 온다.
도중에 지나쳤던 사람인데, 한국사람인 것 같해서 말을 걸었다. 좀 힘들어 보였다. 표정도 발도... 신발을 벘었는데,
발가락에 모두 테이핑을 했다. 물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한국인 여자가 와서 앉았다. 그 분은 50대 중반정도인데
이번이 두번째 카미노라고 했다.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있으니, 인재가 걸어온다.
쉬고 가라고 하니, 서두른다. 진통제를 주고, 50대 아줌마는 케토톱을 주어 붙이게 했다. 2,3일 쉬면 좋아질 거라고 했는데,
충고를 받아들였을 지 모르겠다.
40여분이나 쉬었더니, 갑자기 힘이 넘친다. 배낭을 메고, 기분이 좋아 뛰었다.
금새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에스떼야에서 아침을 같이 먹은 마리아 언니다. 할아버지 2인과 같이 있었다.
그때 그 분들과는 헤어지고, 이 프랑스 할아버지 두분과 팀을 이뤄 걷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조합인데,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힘이 솟구치니, 만시아까지 7km를 1시간 20분 만에 걸었다. 아무래도 비아렌떼까지 걸어야 겠다.
그렇게 속도를 내는데, 누가 부른다.
첫 알베르게에 어떤 남자가 앉아 나에게 뭐라 하는데, 자세히 보니 스캇이다. 짧은 영어로 띄엄띄엄 들으니, 여기 알베르게에 묵으라고 한다.
자기가 베드2개짜리 방에 있는데, 같이 있자고 한다. 그냥 호의일 수도 있지만, 당황스럽다.
잘생기고 매너 좋은 서양남자라 내가 자신없기도 했다. 영어로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데,
당황해서 그 말을 못하고 돌아섰다. 뒤에서 부르는데, 걸어갔다. 웬지 미안하기도 하고, 잘 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 뜻을 설명하지 않고 와서, 계속 생각이 나고 한번 쯤 만났으면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만시아 중심부 가게 앞. 한글로 또박또박 쓰여진 '차가운 음료', 반가왔다. 먼 외국 땅에서 공공연히 한글을 만나다니...
한국인이 많긴 많나 보다.
다시 바르에서 시원한 쥬스를 마시고, 더위를 식히고 출발했다. 12시가 넘은 시간, 이미 일정을 마친 순례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만시아는 좀 큰 마을이었다. 1시가 넘어가는 그 시간에 길은, 아무도 없다. 쏟아지는 열기 속에 혼자 걷는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춤추듯이, 크게 노래도 불러가며... 그렇게 나만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 걷는데 너무 좋았다.
1시간 30분만에 비아렌떼에 도착했다. 중간에 찌라시를 받았던 사설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다시 2층 침대를 배정받고 씻고, 빨래해서 널고, 맥주를 마시며 다리를 주무르고, 일정을 정리했다.
다시 정수리 두피가 화끈거린다. 태양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어디 부딪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5시가 넘어 킴 아줌마가 완전히 붉게 활활 타오르는 상태로 왔다.
어제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오지 앉아 궁금했는데, 일정 중 스페인 여자 집에서 자고 늦게 출발했다고 한다.
그 더위에 그 시간까지 걸었으니, 거의 멘붕상태였다.
비아렌떼 알베르게 고양이. 너무 예뻐서 쓰다듬어 주었다.
더 놀고 싶었으나, 이 녀석은 나에게 별 흥미를 못 느겼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