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

열열덟번째 날 : 5월12일, villacazar de Sirga 에서 Moratinos, 36km

프쉬케73 2012. 7. 19. 20:55

 5월 12일, 이날을 나는 기억한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날 느낀 아주 작은 일들도 기억할 것 같다.

'넌 죽지 않을 꺼야'라고 피트아저씨는 말했다. 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흥분해 하소연을 했다.

죽을 것 같은 더위, 동정이라곤 없는 태양, completo 라고 말하고 돌아선 사람...

정말 인정이 없던 것일까? 난 정말 죽었을까?

 

오늘 어디까지 갈 지 확정한 바는 없지만, 그냥 좀 많이 걷자고 했다. 걷는 것에 좀 자신도 붙었고 해서...

그래도 오늘은 각오가 남달랐다. 시르가 다음 마을인, 까리온 데 로스 콘덴사에서 깔사디아 델라 케사까지 17.2km 구간 동안 마을이 없다.

보통 4~5 km 마다 마을이 있어, 먹고 쉬었기 때문에 먹을 것, 마실 것을 미리 챙겨야 한다. 그런데 시르가에는 별 볼일 없는 구멍가게만 있었다.

까리온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고, 좀 쉬었다. 이 길을 따라 양쪽에 나무가 있고, 나머지는 그냥 밀밭이다. 초록색, 앞에는 지평선...

 

이 새가 이런 가느다란 나무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그럴 만도 한다. 정말 기 작은 풀들 외에는 그 주위에 나무가 없었다.

애쓴다. 새야.

중간에 마을이 있다 해도, 난 거기서 쉴 수도 있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쉬지 않고, 10km 이상을 가기도 하니, 문제는 없다.

사실은 그렇다. 그러나 난 두려웠다. 비닐봉지에 오렌지와 바나나, 비스켓도 샀다. 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일까?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난 유난히 힘들어 했다.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멈췄다. 마을은 없었지만, 순례자를 위한 쉼터는

있었다.

도착하지 않는 지평선, 계속되는 평원이 두려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에 난 숨이 막혔다. 또한

태양과 땅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막혔다.

1시가 좀 넘어 깔사디아 델라 케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시원한 물이 있다. 사람이 정말 좋은 물이라고 먹고 가라고 했다. 미지근한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 청년들이 멈춘 알베르게를 지났다. 더 걸을 만해서 6km 앞에 레디고스까지 가기로 했다.

근처 바르에서 주스와 전날 알베르게 겸 바르에서 싸온 보까디요를 먹었다. 더위에 지쳐 딱딱한 빵이 마치 가죽같았지만, 먹어야 걸으니

꾸역꾸역 먹었다. 근처를 맴도는 볼품없는 개에게 빵 사이에 끼운 초리소를 던져 주었다. 빵을 주니 빵은 안 먹는다.

그렇게 개와 보까디요를 나눠 먹었다. 그리고 레디고스로 출발...

 

 

갈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뒤에서 다리를 붙잡는 것 같다. 상체는 앞으로 나가는데, 다리는 생각만큼 나가지 않는다.

다리가 묵직하다. 좀 있으니, 누군가 빨리 뒤쫓아 걸어온다. 한국청년들, 창우, 태연, 영찬이다. 지들도 레디고스까지 간다고 앞서 간다.

좀 전에 지쳐 보이더니, 힘이 다시 나는 것 같다. 나도 빨리 걷느라고 걷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허벅지 뒷부분이 묵직하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걷는  것 같다. 근육이 붙고 있는 것이다.

2시간 쯤 걸었다. 6km 정도인데, 그 이상을 걸은 것 같다. 태양이 부쩍 힘을 내고 있다.

결국 레디고스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는데, 앞서 간 청년들이 없다. 이 마을에 알베르게는 하나 뿐인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일단 알베르게에 있는 바르에 들어가 시원한 쥬스를 마시고, 남은 얼음을 물통에 담았다. 알베르게가 좀 별루여서, 난 다음 마을 테라디오스까지 가기로 했다.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더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앞에 두명이 가고 있다.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외국인 남녀이다.

 

 

마지막 힘을 내서 걷는다. 드디어 마을 초입에 꽤 큰 알베르게가 보인다. 알베르게가 2개이어서, 다음 알베르게로 갔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두번째 알베르게는 컴플리또. 초입으로 가보라고 한다. 너무 힘이 들었지만, 초입으로 갔다 가는 길에 아까 본 외국인 남녀를 만났다.

그곳도 컴플리또라고... 난 무너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이 다음 마을로 가야 한다고 한다. 3km...

이건 전혀 예상해보지 않았다. 그 시간은 이미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다.

 

 다리가 꼬이고 있다. 힘이 풀렸다. 그래도 별 수 없이 가야 했다.  이 길이 너무 야속했다. 화가 나고 막막했다. 두려웠고.

그렇게 도착한 모라티노스. 호스피탈 산부르노. 주인이 친절하고, 넓고 깨끗하다.

살 것 같다. 씻고, 빨래하고 맥주와 이 얼음과자를 한 번에 사서 먹었다. 열기에 복수하듯, 으득으득 깨물어 먹었다.

 

다리가,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내딛을 때마다, 통증이 대단했다. 발바닥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린다.

머리도 화끈거린다. 얻 부딪친 것 아닐까? 아니었다. 태양열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킴아줌마가 나보다 늦게 도착했다. 자기 죽을 것 같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절뚝이며 걸었다. 눈이 마주친 외국인에게 죽을 것 같다고 너무 힘들다고 말하니,  웃으면서 넌 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요. 아저씨.

이 더위에 4시가 넘어 여기까지 온 사연은 비슷했다.

자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깼다. 다리를 주무르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내일은 조금만 걸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