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월담과 함께 돌봄과 놀이를 하다
민주화기념사업회에서 "돌봄과 놀이를 통한 민주주의 소통 워크숍:민주주의, 몸과 마음을 돌보다"를 신청했다. 아직 강사양성과정도 끝나지 않았는데, 비록 하루지만 약간의 부담을 가졌다. 그러나 이 제목에서 "놀이"가 핵심단어로 보였다. 즉, 주로 온종일 몸을 쓸 거 같다는 것이었다. 진행을 하는 변화의 월담은 몸을 도구화하는 문화를 넘어 몸의 목소리와 활력을 회복하는 바디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하는 스타트업 기업이다. 활동가 단체같기도 하고,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교사연수, 각종 교육, 자체 교육을 이미 많이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을 만지는 것에서 시작했다. 꼭 쥐어보고, 벌려보고, 주무르게 했다. 발 뒤꿈치에 무게를 60을 두고, 발 앞부분에 30, 발가락에 10을 두는 느낌으로 서보고, 한편 다리에 무게를 싣고 다른 한편 다리를 위와 아래, 둥그렇게 돌려 움직였다. 젠가를 발뒤꿈지에 쌓아가 변하나는 무게를 느껴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짝을 정해 작은 공을 주고 받는데, 던지는 거리와 방향을 달리 하고 상대에게 신호를 주고 상대는 그에 반응한다. 그러다 공의 방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짝이 바뀌는 식이다.
순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파트너가 끈이 달린 작은 공을 위, 아래 또는 좌우, 원형으로 돌리면 빈 공간에 자신의 움직임을 채워 넣는 것이다. 팔을 밀어 넣기도 하고, 몸통을 넣다 빼기도 하고, 옆으로 비켜 나가기도 한다. 강사들은 몸이 움직이는 형태가 곡선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딱딱한 나무 토막같이 움직임과 움직임이 딱딱하고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금새 알아차렸다.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는 강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오후부터는 허리가 너무 아팠다. 디스크였다. 허리를 부여잡고도 계속 움직였다. 희안한게 별 말을 하지 않는데도 파트너와 소통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 동네 공터와 골목을 뛰어 다니며 친구들과 얼음땡, 숨박꼭질을 하던 기억이 났다. 땀을 뻘뻘흘리면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며 신나게 웃고 떠들던 기억이다. 요즘은 몸으로 노는 일이 거의 없고, 주로 입으로 떠들고 입으로 먹고 마신다. 어렴풋이 사슬이 느슨해진 느낌, 작은 틈이 벌어진 것 같았다.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것에 예민하고 조심하다 보니, 몸으로 표현하는 좋은 감정 표현, 호의도 낯설어졌다. 일로 만난 사이, 위계가 있는 사이는 거리가 있다. 거리를 좁히는 것도 일방의 생각대로 하면 안되다 보니 더 섬세하게 접근하고 배려하기보다는 그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편한 방법을 선택한다. 놀이로 소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을 안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활동이 수십년만이었다. 엉덩이 쪽이 뭉치고 눈이 감길 정도로 노곤했다. 이런 피로는 정말 생소하다. 다음날 일요일도 온종일 정신을 못차렸다. 이런 활동을 여러번 배워보고도 싶고 정기적으로 이렇게 놀면 긴장과 긴장으로 인한 관계에서 불편함, 예민함이 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