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그 옆에 있는

다시 보다 : 한국근현대미술전, 배운성

프쉬케73 2023. 6. 27. 06:00

다녀온지 10일이 넘었지만, 배운성 화가에 대해서는 꼭 글을 쓰고 싶었다. 다른 월북 화가들처럼 민주화이전까지 언급조차 되지 못했던 사실도 그렇고, 그를 기억할 친인척도 없었는지 국내에서는 흔적조차 없었던 듯하다. 1997~8년 우연히 프랑스 유학생이 골동품가게에서 발견한 그의 그림 수십점...극적이고  운명적 만남이란 이런 일이다. 
카페같은 홀에 있는 유럽인들 속에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자신을 그려 넣은 그림은 기이하고 이질적이다. 이 기이함은 유럽속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존재, 조선사람으로서 정체성을 표현했기 때문인듯 하다. 이미 생긴 것만으로도 다른데, 굳이 갓과 한복을 입혀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1920년대 유럽에서 공부하고 전시회도 하던 이름있는 화가였음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 빼앗겨 이름없는 나라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중요했었던 것일까? 

이 그림도 기이하다. 가족도라고 하지만, 각자 혼자 있는 느낌이고 서로를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다. 마치 작가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죄다 모아 놓은 것도 같다.  과거에 이러저런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후원자였던 백인기 부부, 또는 할머니, 어머니, 동생, 조카들의 모습, 좋아했던 개의 모습이었을지도...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시간대에서 관계했던 사람들, 자신의 삶을 기록한 것 같다. 
그가 그려넣은 자신의 얼굴은 이 그림들이나, 다른 그림들에서도 살짝 미소를 띠고 있다. 장난스럽게도 보인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나  급변하는 시대가 힘들만도  한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것 같다.
가난하고 나라도 없던 시절, 부잣집의 서생으로 후원을 받아 일본유학을 가고, 다시 유럽으로 유학가 미술을 공부하고 거기서 인정받아 성공했고, 2차대전으로 귀국하여 일제에 부역하고 6.25 이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했다. 유럽에서 한국, 남한과 북한으로 공간적 거리와 일제강점기에서 6.25을 지나 분단까지의 시간적 거리를 종횡무진한 작가의 삶이 애닮은 듯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먼  시간과  공간의  이질성이 기록된  한장의  사진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