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몇달 전에 한다는 것을 보고 가야지 하고 있다가, 복잡한 일상속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2주만에 시내를 나가게 되어서, 서울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나서 오랜만에 시립미술관을 가려고 찾아보니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평일이어서 표가 많았지만, 사람도 많았다. 줄을 서서 봐야 했는데 주말에 매진이면 제대로 못 볼 것 같다.
그림마다 다르지만 대표 이미지는 전후 맥락을 다 자른 정지된 화면같다, 또는 모든 사건이 벌어진 다음 장면 같다거나,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을 주는 정지화면 같다. 도시인의 일상에서 소통의 단절, 고독,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나는 상당히 차갑게 정적이고 고요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건물에는 인적이 없거나, 사람이 있어도 어떤 감정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집이나, 가구, 사람, 햇빛... 이런 일상의 풍경이 낯설고 기이하고, 공포영화 같기도 하다. 영화속 한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도 보였다.
특이한 점은 화가의 시선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화가의 주관적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면보다는 주로 사선으로 보고, 안에서 보거나 밖에서 집안을 보거나.
여자를 바라볼 때도 대체로 냉정하게 보이는데,, 여성이 상의 속옷만 입고 하의를 전혀 입지 않은 그림들이 있다. 이번에 없는 그림도 그의 다큐를 끝까지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 그림이 나는 불편했다. 그가 여성에 대한 혐오나 불편함을 가진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제목이 ~ 방안, 실내여도 그냥 일상이기보다는 매춘부가 아닐까 한다. 다큐에서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의 모습이라고 해석을 했다. 그가 파리에서 사랑하던 여자에게 거절당하고 그 여자가 결혼하고 나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이때 피해 여성은 호퍼자신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그렇다면 좀 무섭다. 그런 것도 같고 섹스를 하고 남자가 나가버리고 난 후 남겨진 여자의 모습같기도 하다. 매춘부인것도 같고,
이렇게 쓰다 보니 호퍼의 그림은 이야기가 많은 셈이다. 그 이유는 1시간30분에 걸쳐 그의 다큐를 다 보았기 때문이다. 궁금해서 계속 보았고, 입장료가 비싸서 제대로 보자는 오기도 있었다. 결과는 재미있었다. 그는 말이 없고 사회적으로는 무관심한 보수적이고 꼼꼼한 화가였다. 아내를 잘 만나 그녀의 도움으로 화가로 더욱 성장했다. 그의 삶을 좀더 알게 되니 그림이 이해되는 점도 있다. 아내 조세핀도 참 할 이야기가 많다. 그의 매니저이나, 모델이자, 동료, 아내로 살아가며 자신의 그림은 포기한 사람, 호퍼는 아내를 자양분삼아 성공한 셈이다. 모든 것을 아내와 함께 하고 다른 사람들 하고는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다고. 그럼에도 아내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고 조세핀도 치고 받고 싸웠다고 한다.
호퍼가 그린 그림은 그가 본 세상이고 사회인 것 같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소통하지 않거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자신이 찾은 결과물, 해석한 결과를 그림으로 내어 놓을 뿐이다. 다행히 그 시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해주고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삶이었다. 어떤 사람은 호퍼가 세상의 평에 초연했다고 하던데, 그는 화가로 인정받고 싶고 성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삽화를 그리는 것을 너무 싫어 했다. 일단 인정받고 난 후에는 그리는 대로 팔려나갔으니, 성격에 맞지 않는 딱히 친절한 해석이나 소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큐를 보니 그의 그림 중에서 아주 일부만 왔고, 그 중에 가장 좋았던 그림은 푸른 저녁이라는 그림과 철길의 석양이다. 푸른 저녁은 파리의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가운데 화장이 진한 여자가 매춘부이고, 광대는 호퍼, 맞은편 포주와 흥정을 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해석하였다. 파리 생활의 기억에 상상력을 더해 그렸고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이였다고 하는데, 뉴욕 평단에서는 혹평을 받았다고... 그 이후론 이 그림을 개인이 소장하고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사후에 조세핀이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미국에서 잘 팔린 그의 그림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태양빛이 없고, 붉고 노란 전등불빛이 여러개, 사람들의 표정이 드러나고, 1900년대 초에 밤에 짙게 화장하고 몸을 드러내고 술집에 앉아 있는 여자는 매춘부일 터이다. 뒷모습만 있는 여자와 그 앞에 남자는 부르주아 라고 해석했지만 내 생각엔 그 여자도 매춘부인 것 같다. 호퍼는 파리에서도 같은 시대 화가들이 머무는 지역과 다른 곳에 머무르고 그들과 교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저녁에 사람많은 술집에서 뭐하고 있는 걸까? 자기를 거절한 그 여자와 자신을 냉소하고 혐오하는 것은 아닐지, 그런 감정이 표현된 것은 아닐지...
철길의 석양은 멋진 풍경화이다. 외롭고 쓸쓸하지만호퍼의 감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다시 보니 낮은 언덕보다 철로가 높이 있는데, 위치가 좀 이상하다. 노을이 저렇게 평평하게 보이려면 평야와 지평선이어야 할 것 같다. 산능선이 있으면서도 저렇게 보이려면 철길이 얼마나 높이 있어야 하는 건가... 내가 미국을 잘 몰라서일수도 있고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일수도 있다. 호퍼가 이런 식이어서 일상의 풍경인듯 무심히 보다가 낯설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들이다. 1시간 30분짜리 다큐를 다 보았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