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설악산은
그녀들과 설악산 대청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작년에 혼자서 대청봉을 오르고 나서 나눈 이야기가 자신은 할 수 없다였으니까. 족저근막염으로 못한다 포기했는데, 등산스틱을 사용하게 되면서 통증이 사라졌다고 도전하게 되었다. 이러저런 장비를 사고 버스표를 예매했다 취소하며 결국 보라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다.
새벽 3시 출발, 용산에 만나기로 했는데, 보라언니가 오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고... 20분정도 지났나... 그녀는 자다가 전화를 받았다. 너무 놀라 정신없이 차를 가지고 나와서 출발했다. 토요일 새벽에 우린 출발했다. 6시가 조금 넘어 오색 도착, 김밥을 먹고 택시를 타고 한계령 휴게소로 이동해서 7시 정도에 출발했다. 그 시간에 출발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생각같아선 더 일찍 출발해야 했다.
한계령 길은 오색 코스보다 더 힘들었다. 더 험하고 길고 멋진 경관을 보며 갈 수 있지만, 너덜길이 이어지고 사족보행을 해야 하는 길도 많았다. 5시간 걸린다는 중청을 태영이와 나는 6시간30분만에 도착했다. 천천히 여유있게 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 경관은 한계령을 기준으로 한쪽은 맑음, 한쪽은 구름이 자욱했다.
너무 아름다웠던 길이다. 파란 하늘, 늦가을에 마른 잎이 떨어진 돌길이 멋있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 긴 시간을 몰랐기에 더 기분이 좋았다.
한편에선 이런 웅장한 모습이 너덜길을 위태롭게 걷는 힘겨움을 잊게 해주었다.
중청으로 갈수록 파란 하늘은 없어지고 대청봉에 올라서도 구름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작년에 본 멋진 하늘과 산세, 속초시내와 동해바다까지 푸른 산과 하늘이 어우러지던 그 날은 얻어 걸린 날이었다.
대청봉에 오르고, 대청봉을 보았다. 그때가 2시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구름속 습기인지, 빗방울인지, 머리도 젖어가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리막길을 조심히 내려오다 보니 1시간에 1키로를 내려왔다. 오색이 5키로 이니, 이대로면 5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해가 진다. 걱정스러워 서두르기 시작했지만, 결국 5시가 넘으면서 어두워졌다. 랜턴을 켰지만, 오색의 내리막길은 너무 생각보다 위험했다. 작년에 오를때는 힘들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다. 무시무시한 오르막 돌길은 내려갈때 보니 심하게 울퉁불퉁했고, 잘 보이지도 않았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태영이는 모르는 이들의 발끝에 불을 비춰주었다. 속도는 더 느려졌고 완전히 어두어져서야 내려왔다. 너무 비싼 랜턴을 샀다고 뭐라 했었는데 그 대단한 밝은 빛으로 타인의 발끝을 비춰주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다리도 발도 너무 아팠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9시간 걸린다는 그 길을 우리는 12시간 걸렸다. 그래도 다행이고 덜 힘들었다. 아마도 함께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날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나와 친구들이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고 온 날에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믿을 수 없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