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혼을 보고 생각난 은하철도999
처음엔 너무 연기가 어색하고 유치하여 보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 보니 나름 복잡한 서사와 갈등, 어여쁜 주인공 들 보는 재미가 있다. 전우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를 좋아하는 개인의 취향도 크다.
환혼을 보며 든 생각이 저렇게 환혼을 밥먹듯이 하면 돈있고 권력있는 자들은 영생을 실현하겠구나 싶었다. 누리고 누리다늙고 병든 육신을 버리고 젊고 아름다운 육신으로 갈아 타면 그뿐이다.
무능력하고 무력한,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시간들, 슬픔과 행복이 교차하고, 고난과 성취가 반복되는 성장의 시간을 감당하지 않고 권력과 돈으로 그 열매만 차지하는 거다.
평생을 바쳐서 만들어 놓은 젊은 육신은 뺏았기고 늙고 병든 육신으로 돌려받는 일은 참 끔찍하다.
그 장면은 저임금 노동자,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을 전담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음울한 비유같기도 했다.
그들의 현재를 만든, 보살핌과 성장의 시간을 싹둑 잘라 버리고 현재의 시간을 사서 전유하고 다 소비해버리는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매매된 시간동안 죽거나 다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소진되면 판매의 대가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재생산해야 한다. 원상회복되지 않으면 더 낮은 일자리로 가거나 늙고 병든 몸만 남게 된다.
근로계약을 통해서 제한된 시간만을 산다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한다면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은 시간단위로 나누어 존재할 수 없고 매 시간 온전히, 총체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매매된 시간동안 상처받으면 그 이후 시간동안 회복해야 하고, 만일 죽는다면 그 이후의 존재가 사라진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가 이어진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만을 사고 그 대가를 지급하는 정당한 근로계약은 인간 존재의 대부분을 삭제한다.
이 생각은 은하철도 999까지 이어졌다. 오랜 전 보면서도 충격을 받은 만화이다. 영생을 누리는 기계인간 밑에 하층민, 죽여도 되는 짐승으로 취급다는 인간들... 기계인간에게는 눈이 없었다. 변변한 입이나 코, 귀도 없었던 것 같다. 생명이 있으나 인간은 아닌 것이다. 인간다움이 없는 욕망으로 가득 찬 기계일 뿐이다. 영원한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인간다움이 사라진 존재는 그 시간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죽음은 두렵지만, 유한한 시간은 삶의 이유를 찾게 만들고 행복을 추구하게 만든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고 그래서 슬프지만, 영원한 삶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시간의 감옥과 같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
많은 돈으로 타인의 노동을 사는 사람은 타인의 시간을 소비하며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누리고, 이들에게 시간을, 삶을 강탈당하는 사람이 있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은 어디엔가 고용되어 자신의 시간과 삶을 양도하고 그 대가로 삶을 이어나가는,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이런 진실을 잊지 않아야 힘 센 타인에게 잡아먹히거나 스스로 괴물이 되어 타인을 잡아먹지 않고 이 자본주의에서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거다.